진보와 혁신의 이면
진보, 혁신이라는 말과 함께 등장하는 새로운 기술의 향연들은 때때로 그 기반, 바탕이 되는 사고 방식 가운데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지혜가 들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때로 그것은 그러한 사실을 의식하고 받아들임에서 시작한 것이기도 하고 때때로 그것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렇게 된 경우이기도 하다.
가장 진보적인 사고 방식은 ‘자연’
나는 가장 진보적인 사고 방식은 바로 ‘자연(自然)’에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자연>에 대한 해석은 고대 중국의 관념과는 대단히 차이가 있다. 중국어는 Mono-syllabic Language의 형태를 띈다. 즉, 하나의 문자가 의미를 내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그들의 언어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 한문이고, 한문은 하나의 글자가 뜻 글자로 한 자 한 자가 의미를 갖는다.
고전에서의 자연의 해석
혹자는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도올 김용옥 교수는 ‘자연’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스스로 그러함’이라는 해석을 했다(길과 얻음 - 통나무 / 노자 저 김용옥 역 참조).
Arthur Waley는 Nature라는 해석을 하고 있으며, 과거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했는데, 이러한 그들의 사고는 <자연>이라는 그들(서양인)의 사고에서 비롯된 관점인 것이지 한자 문화권에서 시작된 <자연>과는 의미가 멀다.
이에 반해 James Legge는 <자연>을 its being what it is로 번역했다.
세계에 대한 객관적 탐구와 오래된 지혜들
세계에 대한 수학적 진리를 통한 탐구는 묘하게도 동양의 오래된 지혜로 연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하나하나 벗어내고 가장 중요한 핵심을 남기는 것은 중요하다. 동양의 무예는 그러한 것을 추구했고 구현해 내오는 하나의 방편이기도 했다. 수학 또한 그러해서 해답에 대한 기술이 길고 너저분한 문장이 되도록 하는 대신에 간결하고 핵심적인 문자와 기호들로 명확성을 높인 공식을 표현하는 것이 그러하다.
새 컴퓨터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최신판 운영체제인 윈도우즈(Windows)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를 못내 자랑스러워하는 친구에게 무료한 표정의 브린(Sergey Brin)이 찬물을 끼얹었다.
“MS는 조잡해.”
그리고 냉큼 기숙사 방으로 뛰어가더니 하리나라얀의 컴퓨터에 무언가를 열심히 설치하는 것이었다. 브린의 조작을 거친 하리나라얀의 새 컴퓨터는 그 후 윈도우즈 대신 리눅스(Linux)라는 운영체제로 움직여야 했다.
상대가 나를 의식하지 않도록 한다
<나>의 존재감이 거대하여 상대로 하여금 나에게 엄청난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기 어렵지만 하나의 조직 혹은 단체 혹은 환경에서 그 사람의 생각의 반영이 해당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가장 핵심적인 인물인 경우도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위대하다고 생각된다. 한 사람의 삶과 범위에는 한계가 있지만, 누군가 위대한 사유를 바탕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움직이게 한다면 사실상 그는 아주 거대한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리고 그것은 때때로 정말 오랜 세월 유지될 것이다.
















